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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아빠의 가정분만

아내와 나 사이에 우리 '나라'가 찾아온것은 작년 6월 이었다. 1월에 결혼후 신혼을 보내기엔 짧은 시간 이었지만 기쁜마음으로 나라와의 만남을 축복하였다.

보통 임신사실을 알고나면 병원 및 빠르면 산후조리원 까지 예약을 한다고 했지만, 아내는 먼가 달랐다. 나에게 자연주의출산 이라는 것이 있다며 설명 해주었다. 아내에게는 겉으로는 "응 그래" 하며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는 척 하였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니 어떻게 집에서 둘이서 아이를 낳을수 있단 말인가!! 혹시라도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내가 아닌 그 누구의 아빠라도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거부의 반응이 생기는게 당연할 것이다!! 애초에 대부분이 자연주의출산 이라는 단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의견을 조율 하기 보다는 아내의 생각을 존중 하기로 하였다.

그 후부터 나도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자연주의 출산의 한 줄기인 '히프노버딩' 책을 구입하고,자연주의 출산 동영상을 구입하여 남편둘라의 역할을 해나가기 위해 수시로 아내와 정보를 습득하고 배워 나갔다.

그래도 출산시의 응급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수가 없었다. 하지만 119 아저씨가 우리 곁에 항상 있으니... 그리고 아이는 스스로 잘 나올꺼란 믿음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내 나름대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수없이 하였다.

생각보다 자연주의 출산을 지향하는 병원이 많지 않았기에 병원 선택에 신중을 기한 것 같다. 나의 아내는 중요한 초음파 검사를 제외한 나머지 검사를 일체 하지 않았다. 물론 돈이 아깝다고 생각해서 내린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내는 이미 온전히 아기에게 집중하고 우리 부부가 공부한 것을 믿고 있었다. 덕분에 출산후에도 고운맘 카드 잔액이 남았지만, 돈을 바란것이 아니기에 아깝지 않았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가정분만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양가 부모님들께서 극구 반대를 하셨다. 몇 일 간에 이야기를 한 결과 가정분만을 준비하면서 조산사를 부르는 것이었다. 충분히 부모님 입장을 이해한다. 의료적인 도움없이 출산을 한다는 것이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실만도 하다. 하지만 의료적 개입없이 온전히 아기를 믿고 출산하는것이 자연주의출산의 핵심이기에 병원을 갈 순 없었다.

34주가 되서야 온누리 조산원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받았다. 첫만남은 너무 편안 그 자체였다. 순간 장모님을 떠올릴 정도로 편안하였다. 기본적인 질문과 아내의 몸 상태를 체크하셨다. 마치 아내를 딸 대하듯이 편하게 해주셨다. 그러고 나서 따님이신 두 분의 홍순교, 홍순례 조산사 분들께서 이론적인 교육과 남편과 함께할수 있는 체조 및 마사지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강해질 수 있게 교육을 해 주셨다. 그 모든 분위기가 너무 편하고 웃으면서 배웠다. 경험을 가지신 누군가가 있다는것이 심리적으로 큰 힘이 되었던것 같다.

37주 4일 째 되던날(2월25일), 오전중 일을 하고 있던 나에게 아내에게서 '이슬이 비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순간 날이 온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정일(3월 14일) 보다 훨씬 빠른 날이기에 조산원 원장님도 오후 8시쯤 방문한다고 하셨다. 그날 아내는 점심에 최후의 만찬을 하듯 거하게 드시고 살짝살짝 아프던 배가 오후8시 30분 부터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되었다. 난 초콜릿등 간단히 먹을 거리들을 준비하였다.

진통의 시작!! 원장선생님과 따님이신 홍순교 조산사님이 출산준비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때마침 오셨다. 너무 든든했다.

머릿속으로 셀수없이 연습을 하였던 상황이다. 조산원에서 가르켜준 대로 행동했다. 진통은 파도처럼 온다. 아플때면 너무 아프고 안아플때는 언제그랬냐는듯이 괜찮다. 그러기에 버틸수 있다. 물론 내가 직접겪지 않아서 건방진 소리일수 있으나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 쉬는시간이 있기에 버틸힘을 충전할수 있다. 통증이 올때면 이완을 위한 호흡을 계속해서 해 나갈수 있게 옆에서 같이 호흡을 해줬다.

홍순교 조산사 선생님과 중간중간 체조와 마사지를 해주셨다. 사실 남편인 내가 할 수있는 거라곤 없었다. 호흡을 같이하고 계속해서 마사지를 해주는 것 밖에는 진통을 하는 아내를 온전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제일 힘들었다.

진통간격이 더울 짧아지고 진통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아내는 진통을 이기지 못하는듯 하였다. 본능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고 너무 아픈 나머지 호흡이 불안정 해졌다. 너무 아파하는 아내를 보니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내가 믿고 있는 내가 무너질순 없었다. 원장 선생님이 계속해서 아내의 멘탈을 붙잡아 주셨다. 정말 친어머니처럼 계속해서 쓰다듬고 괜찮다고 격려해주셨다. 욕조로 들어갔다. 부력의 힘을 이용하여 진통을 이겨 나갔다. 오후11시에 2cm였던 자궁문이 새벽 1시 30분에 6cm 나 열렸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했다. 중간에 구토도 하고 쉽지가 않았다. 구토를 하고 나서 원장 선생님이 수액을 놔 주셨고 아내는 조금이나마 편안해 했다.

'이제는 병원을 가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조금만 힘내자! 오늘을 위해 우리가 연습해오고 준비해온것들이 이제 끝을 맺어간다'

'지금 나라도 최선을 다해서 나오고 있다.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 원장선생님과 열심히 격려를 하며, 아내를 도왔다.

아내는 아픈 상태이지만 호흡과 이완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조산사 선생님들과 열심히 마사지를 하고 아내를 격려하였다. 정말 자기 가족처럼 아내를 대해 주셨다. 전에 물어봤지만 이 일을 정말 사랑하신다고 하셨다.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드실텐데 괜찮다고 끊임없이 아내를 쓰다듬고 말을 걸어 주셨다.

오전 4시가 다되어가서 양수가 터지며 애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많이 지친 아내를 격려하며 끝까지 호흡을 함께하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기 머리가 살짝 보였다 안보였다 하였다.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아내와 모든 상황과 모든 것들이 감사했다. 하지만 지금 울순 없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적당한 힘주기를 하던때와 반대로 이제는 힘을 빼야한다. 원장선생님의 신호에 맞춰서 힘을 빼야 한다. 아니면 회음부가 상처를 입는다.

약 6시간 반만에 '나라' 가 회전을 하며 드디어 나왔다. 임신 37주5일. 2월26일 오전 4시5분이었다. 바로 선생님께서 아내 몸에 올려주어 캥거루 케어를 하고, 난 눈물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태반도 바로 나오고 시간이 지나고 탯줄도 내가 직접 잘랐다.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순간에 우리 가족 셋이 함께 있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난 아빠가 되었다.

후에 우리 부부가 지쳐보였는지 모든 뒤처리와 정리를 해주셨다. 심지어 설거지 까지도....ㅠ 너무 감사할 따름 이었다. 애기의 기본적인 검사도 해주시고 딸이 아이를 낳은것 마냥 '장하다'고 칭찬해주셨다. 하루가 지난 뒤에는 또 먼길을 오셔서 애기 상태를 체크해주시고 모유수유에 대한 모든것을(ㅡ.ㅡ) 전수해주시고 가셨다. 피곤하실텐데도 일부러 먼길을 오셔서 방문해주셔서 감사했다. 가실때에도 무슨일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가셨다ㅎ 아내도 너무 만족하고 둘때 또한 온누리 조산원 선생님과 함께할 생각이다.

다시한번 글로나마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ㅎ

그리고 자연주의출산을 준비하시는 부모님들의 그 용기에 진심으로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남편분들의 강인한 지지와 자연주의출산의 그 믿음이 아내분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연주의출산을 통해 가정을 형성하는 첫 단추에 부부만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가질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리고, 온누리 조산원장 선생님과 따님이신 두 분의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ㅎ 둘째때 뵙겠습니다ㅎ 모든 산모들과 어머니들은 위대 하십니다! 힘내십시요! 파이팅입니다!!

온누리와 첫 만남

처음이라 모르는 것부터, 함께 이야기해요.

아직 출산 방법을 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지금의 고민을 듣고, 필요한 준비를 차근차근 안내해 드립니다.